🦢 꺼우꺼우, 동서양을 지켜온 마당의 파수꾼
"꺼우 꺼우!" - 시골 마당에서 울려 퍼지는 이 독특한 울음소리의 주인공, 바로 거위(鵝, Domestic goose)입니다. 우리말로는 '게사니', '때까우'라고도 불리는 이 새는 단순한 가금류를 넘어 오랜 세월 인류 역사와 함께해온 특별한 존재입니다. 옛 사람들이 개리(Swan goose, Anser cygnoides)와 회색기러기(Greylag goose, Anser anser)를 길들여 식용으로 개량한 거위는 인류 최초의 조류 품종개량 사례로 기록되어 있죠. 오늘은 이 매력적인 새의 역사부터 다양한 활용법까지 파헤쳐 보겠습니다. 😉
🌏 동양과 서양의 거위, 무엇이 다를까?
동양과 서양의 거위는 겉모습이 비슷해 보이지만 실은 다른 조상을 두고 있습니다. 동양의 재래 거위는 '개리(Anser cygnoides)'를 길들인 것이고, 서양의 거위는 '회색기러기(Anser anser)'를 길들인 것이죠. 가장 큰 특징은 동양 거위의 부리 상단에 있는 혹! 이 작은 돌기 하나로 두 품종을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820년에 신라아(新羅鵝)를 일본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고, 일본에서는 약 1,500년 전에 거위를 길렀다고 하니 우리 조상들은 이보다 훨씬 전부터 거위를 기르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글로는 옛날에 '거유', '게오', '게우'로 불리었으며, 한자로는 '아(鵝)'가 표준어로 사용되었답니다.
🔒 집 지키는 개 대신, 거위의 놀라운 경비 능력
거위는 지능이 높은 동물로, 놀랍도록 강한 배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은 잘 따르지만, 낯선 사람이 오면 시끄럽게 울거나 날개를 활짝 펴고 다가가 위협하죠. 이런 습성 때문에 옛날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집 지키는 개 대신 마당에서 거위를 자주 길렀습니다.
거위의 경비 능력은 역사적으로도 유명합니다. 기원전 390년 알리아 전투에서 로마의 신전에서 키우던 거위들이 갈리아인의 침입을 울음소리로 알려 위기를 모면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죠. 국내에서도 개성 지방에서는 개 대신 거위를 많이 키웠다고 합니다.
심지어 현대에도 거위의 이런 생리를 활용하는 곳이 많답니다.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 '발렌타인(Ballantine's)'의 숙성고는 2012년까지 거위 떼를 동원해 지켰고, 브라질의 교도소에서도 경비견 대신 거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훈련도 거의 필요 없고 밥만 주고 방치해도 되니 유지비가 적게 들고,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가 함께 있으면 더욱 효과적이라고 하네요.
그렇다고 거위가 무섭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배타성이 높다는 것은 반대로 자기 무리 안의 존재에게는 강한 친밀감을 보인다는 뜻이기도 하죠. 사람의 손에 자란 거위는 주인에게 애교를 부리기도 하며, 목줄을 매달면 산책도 가능합니다. 다만 모든 지나가는 것에 시비를 걸기 때문에 한적한 시골길이 아니라면 산책은 추천하지 않는답니다!
🍗 식탁 위의 고급 식재료, 거위 요리의 세계
거위는 주로 알과 고기, 깃털을 위해 사육됩니다. 가장 유명한 거위 요리는 역시 '푸아그라(Foie gras)'인데, 이는 거위의 간으로 만든 프랑스의 특산품입니다. 다만 만드는 방법이 영 좋지 않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죠.
푸아그라에 가려 있지만, 사실 거위 고기 자체도 상당한 별미입니다. 동서양 구분 없이 거위는 고급 식재료로 각광받았는데, 중국에서는 가금류 고기의 서열이 '거위>비둘기>오리>닭' 순으로 매겨질 정도니까요. 특히 광동 요리인 거위구이가 매우 유명합니다.
북한에서는 거위를 '게사니'라고 부르며 보양식으로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북한의 고급 식당에는 게사니 구이, 찜 등과 같은 요리가 메뉴에 빠지지 않는다고 하네요.
거위의 알도 식용이 가능합니다. 풍미는 계란과 비슷하지만 흰자와 노른자 모두 계란보다 점성이 훨씬 높아 조리 전에는 마치 슬라임처럼 끈적거립니다. 완숙으로 삶으면 흰자는 탄력이 높아 구운 계란과 비슷한 식감이 되며, 노른자는 달걀보다 퍽퍽해서 목이 많이 막힌다고 합니다. 미디엄 웰던 정도로 반숙으로 삶아 먹으면 고급스러운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한번 도전해보세요!
🧥 추위를 이기는 비밀 무기, 구스다운의 세계
거위의 털은 겨울철 의류의 충전재로 널리 사용됩니다. 오리털(덕다운)보다 잔털이 풍부해 같은 부피에서 더 가볍고 보온성도 뛰어나기 때문에 프리미엄 다운재킷의 주요 소재로 자리 잡았죠.
거위 털은 깃대가 달린 깃털도 함께 쓰지만, 보온성의 진짜 주인공은 'Down'이라고 부르는 속털입니다. 오리털은 '덕다운', 거위털은 '구즈다운' 또는 '구스다운'이라고 부르며, 영어로 아래쪽을 뜻하는 'Down'과는 동음이의어입니다. 이 털은 물에 잠기는 부위에서만 나며, 물에 젖지 않고 부드럽고 매우 가벼운 특성이 있습니다.
패딩 브랜드에 '구스'라고 쓰여 있다면 100% 거위털 패딩이라는 속설이 있지만, 실제로는 '캐나다 구스'와 같이 브랜드 명에 '구스'가 들어가더라도 오리털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으니 주의하세요!
📚 역사와 문화 속의 거위 이야기
거위는 역사와 문화 속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중국 동진 시대의 명필 왕희지는 거위 매니아로 알려져 있는데, 좋은 거위가 있다면 어디든지 찾아갔을 정도였습니다. 잘생긴 거위 한 마리를 사기 위해 도덕경 한 권을 필사해서 줬다는 일화도, 거위를 잡아 대접하려던 집주인에게 사색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옵니다.
또한 금나라의 황제 해릉양왕은 거위 고기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신하들이 거위 1마리를 사는 데 소 1마리와 바꿔올 정도였다고 합니다. 물론 거위를 구하지 못하면 사형이었다니, 그 시대 신하들의 고충이 느껴지네요.
『지봉유설(芝峯類說)』에는 "거위는 귀신을 놀라게 한다.", "거위는 능히 도둑을 놀라게 하고, 또 능히 뱀을 물리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그 똥은 뱀을 죽인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옛 사람들이 거위를 얼마나 신비롭게 여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서양 문화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가 유명하고, 보석을 삼킨 거위의 배를 가르려는 주인과 이를 말리는 사람의 이야기도 동서양에 퍼져 있습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단편 중 하나인 '푸른 카벙클'도 거위 뱃속에 들어가 있던 보석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 거위 사육의 과학: 어떻게 키워야 할까?
『전어지』에는 거위의 사육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위는 모양이 작고 털이 많으며 다리가 가늘고 짧은 것이 둥우리를 잘 지키고 새끼를 잘 기른다. 한 살 된 것이 두 번째로 품은 것을 종자거위로 한다. 암수 3:1의 비율로 기르며, 첫배에는 10여 개의 알을 낳는데, 오곡을 넉넉히 주어 기르는 것이 알을 많이 낳는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거위는 봄과 가을에 30~42개의 알을 낳으며, 부화 기간은 약 30일입니다. 가금용 혼합사료와 야채로 쉽게 사육할 수 있으며, 부화한 새끼는 오리새끼와 달리 바로 활동하지 않고 점차 뛰어다니다가 헤엄도 치게 된다고 합니다.
다만 울음소리가 포효 수준으로 굉장히 크고 24시간 내내 꺼우꺼우 거리며 울어대기 때문에,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서는 키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은 참고하세요!
🧠 거위의 지능과 각인 현상
거위는 지능이 높은 조류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오스트리아의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가 연구한 '각인 현상'은 거위(정확히는 회색기러기)를 통해 발견되었습니다. 갓 부화한 새끼 거위가 처음 본 움직이는 대상을 어미로 인식하는 이 현상은 동물행동학의 중요한 발견으로 기록되었죠.
또한 알을 품는 어미거위는 다른 조류들과 달리 주변의 알들을 모두 자기 알인 줄 알고 품으려고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알들을 크기나 색깔로 구별하지 못해서 주변의 동그란 것들은 모두 품으려 하는데, 스펀지의 실험 결과를 보면 달걀은 물론이고 당구공, 전구, 심지어 자기만한 타조알마저도 품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 대중문화 속의 거위
최근에는 거위가 대중문화 속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 호주의 게임 개발사 House House에서 만든 'Untitled Goose Game'은 거위 입장에서 인간들을 괴롭히는 게임으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2020년에는 개발자 샘 치에트가 만든 'desktop goose'라는 프로그램이 유튜버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는데, 마우스를 물어가거나 메모장을 꺼내 말을 걸거나 발자국을 남기는 등 바탕화면을 혼돈의 도가니로 만들어 유저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었죠.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 시리즈의 캐릭터 '핑'도 거위이며, 스웨덴 동화 '닐스의 모험'에 나오는 '모르텐'도 거위입니다. 이처럼 거위는 다양한 창작물 속에서 독특한 캐릭터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 캠퍼스의 상징, KAIST 거위
한국에서 거위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KAIST(한국과학기술원)의 상징 거위입니다. 본원 오리연못에 서식하고 있는 이 거위들은 많은 학생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캠퍼스의 명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거위가 대장 노릇을 하는데도 연못 이름은 '오리연못'이라는 것! KAIST 교내에는 너구리도 자주 출몰하고 고양이들도 많이 살고 있는데, 아마도 거위들이 오리들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추측됩니다. 건국대학교의 일감호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 마치며: 인류의 오랜 친구, 거위
때로는 집 지키는 파수꾼으로, 때로는 식탁 위의 고급 요리로, 또 때로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따뜻한 충전재로... 거위는 수천 년 동안 인류와 함께하며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삶에 기여해 왔습니다.
최대 50년까지 살 수 있는 긴 수명과 높은 지능, 그리고 강한 면역력을 가진 이 새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 다음에 시골을 방문하게 되면, 꺼우꺼우 울어대는 거위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때는 조금 가까이서 이 매력적인 새를 관찰해보세요. 다만 너무 가까이 가면 공격받을 수 있으니 적당한 거리는 유지하는 게 좋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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